[불토리 인물탐구 시리즈] 아시아의 여신, 유키 마이코 평전 - 제2화 -

불토리 2017.05.30 11:42 조회 수 : 2606 추천 : 0 댓글 : 9

 

 

[불토리 인물탐구 시리즈]

아시아의 여신, 유키 마이코 평전

 

- 제2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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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회의감에 은퇴를 결심하다

 

 

이후, h.m.p와 우주기획에서 거의 1년 간 이중 전속 배우로 있으면서, 12편의 AV를 찍었다. 작품 성향은 대체로 무척이나 소프트하고 평이한 드라마였던 것 같다. 한창 인기가 무르익고 있던 1996년 봄, 유키 마이코는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AV에서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것이 첫 번째 은퇴였다.

 

 

은퇴작은 5월 17일에 <사요나라 유키 마이코(さよなら夕樹舞子)>라는 타이틀로 h.m.p에서 발매되었다. 갑작스런 은퇴에 대해서는, 아직 성폭력의 트라우마를 떨쳐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그렇지만, 그건 표면적으로 내세웠던 이유였고, 사실은 다른 이유가 몇 가지 더 있었던 것 같다.

 

 

우선, 유키 마이코는 업계에서 소문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공주 같이 극진히 모셔졌고, 그런 대우를 받는 것을 아주 당연한 것인 양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공주 대우는 어디까지나 AV에서만이었다. 잡지에 쓰일 사진을 촬영하거나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일도 있었는데, 이런 현장에서는 그저 여러 다른 출연진 중 한 사람 정도로 취급받았다. 그럴 때마다 유키는 자기가 무시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 아무도 나를 신경써주지 않는 거야"라며, 철없는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아직 비즈니스 세계의 냉혹함을 알지 못하는 아이였다. 나쁜 소문은 조금씩 살이 보태지면서, 금세 업계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런 뒷담화를 퍼트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자기가 가장 믿고 따르던 주변 스탭들이라는 걸 깨달았을 때, 유키 마이코는 어마어마한 배신감에 충격을 받았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에,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자신의 직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좋지 않다는 것도 은퇴를 결심하는 데 한 몫 했던 것 같다. 친구들은 AV배우에 대하여 '창녀'라니 '걸레'라는 말을 서슴 없이 내뱉곤 하였다. AV 활동 당시에 사귀고 있던 애인이 한번은 홧김에 "넌 그래봤자 AV스타일 뿐이야"라는 폭언을 하기도 했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전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걸 접고, 예전처럼 평범한 여자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만 19에서 20살이 되는 1년여 기간 동안, 유키 마이코는 완전히 활동을 접었다. 아직 업계의 큰별로 남기에는 다소 짧은 경력이었다. 이대로 영영 복귀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마 이대로 팬들에게 '한 때의 반짝 스타' 또는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추억의 배우' 정도로 남았을 것이다.

 

 

[1995~1996년, 유키 마이코의 필모그래피]
1995년 4월 22일, h.m.p, <処女宮 卒業〜グラデュエーション〜>(품번 ITF-111)
1995년 5월 28일, 우주기획, <いたずらベイビー Naughty Baby>(품번 IF-060)
1995년 6월 20일, h.m.p, <処女宮 誘惑〜テンプテーション〜>(품번 ITF-116)
1995년 7월 23일, 우주기획, <天国まで連れてって>(품번 IF-067)
1995년 8월 18일, h.m.p, <でらうま!マンゴー>(품번 ITF-018)
1995년 9월 10일, 우주기획, <気まぐれヴィーナス>(품번 IF-073)
1995년 10월 17일, h.m.p, <新・ハマッチョバナナ>(품번 ITF-023)
1995년 11월 12일, 우주기획, <エンジェルキッス>(품번 IF-083)
1995년 12월 12일, h.m.p, <あそこがQ クチュクチュ舞子>(품번 ITF-027)
1996년 2월 13일, h.m.p, <お嬢様ぬれすぎです 肉欲プリンセス>(품번 NTF-003)
1996년 3월 3일, 우주기획, <秘蔵>(품번 FX-025)
1996년 5월 17일, h.m.p, <さよなら夕樹舞子 「しようよ…逢えなくなるから」>(품번 NTF-009)
※ 1996년 4월 에이치출판에서 사진집 <Love―夕樹舞子最終章> 발매.  

※ 잡지 출연: <Beppin-School>(1995.03), <Bejean>(1995.04.15), <スコラ>(1995.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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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 마이코의 아홉 번째 작품, <쿠츄쿠츄 마이코>(ITF-027)

※ 쿠츄쿠츄(クチュクチュ)란 여성이 자위할 때 질척거리며 나는 물소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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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 마이코의 열두 번째 작품이자, 은퇴작 <사요나라 유키 마이코>(NTF-009)

 

 

  #5 홍콩에서의 AV 붐

 

 

그런데, 은퇴 이후에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홍콩에서 난데없이 유키 마이코의 AV가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일본의 AV는 내수용 상품이었고, 해외 진출은 아직까지 이루어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유키 마이코가 머나먼 이국땅 홍콩까지 알려질 수 있었을까? 여기에는 VCD라는 매체가 큰 몫을 했다. 

 

 

콤팩트 디스크(CD)는 1979년 필립스와 소니가 공동 개발하였고, 82년에 상용화되었다. 87년에는 CD에 비디오 영상을 담을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CD에 5분짜리 뮤직비디오 밖에 넣을 수 없었지만, 점차 용량을 늘려 90년대에는 80분짜리 영화를 담는 게 가능해졌다. 1993년 VCD(비디오CD) 표준이 만들어졌다. 이제 막 PC가 대중화되던 시기였고, 97년 가구별 컴퓨터 점유율은 일본 기준으로 20% 이상이었다(참조: 일본전자공업진흥협회, <퍼스컴백서>, 1999). VCD 전용 플레이어가 따로 발매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VCD는 실패한 매체였다. 적어도 일본과 한국에서는 그랬다. 일반적인 시청자의 눈으로 보기에 VHS는 기존의 VHS 비디오와 비교하여 영상 화질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영화 한 편에 CD 2장 이상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이용하기에 불편한 매체로 여겨지기도 했다. 게다가 기존의 VHS 비디오로 볼 수 있는 컨텐츠의 양이 훨씬 더 많았다. 1993년 일본에서는 AV가 VCD로 출시되기도 했지만, 큰 호응을 얻지는 못하였다.

 

 

반면에 유독 중화권에서는 VCD가 큰 히트를 칠 수 있었다. 애초에 관련 기기를 가장 먼저 상용화한 게 중국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따오판(盜版)'이라고 불리는 해적판들이 기승을 부렸던 것이 VCD 시장을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싶다. 90년대 중반, 일본 대중문화가 아시아권에서 큰 호황을 맞이하면서, 주로 일본의 컨텐츠들이 대거 따오판 VCD로 제작되었는데, 이 중에는 일본 AV도 포함되어 있었다. VCD는 비교적 제작이 쉬웠기 때문에 저가에 불법복제가 가능했다. 작고 가볍기 때문에, 중국 본토 대륙에서 CD를 구워서 홍콩이나 대만 등지로 밀수출하기가 쉬웠다.

 

 

처음에 노점상에서나 판매하던 따오판 AV은 점차 인기를 몰면서 일반 상점이나 대형 쇼핑몰에서도 취급하기 시작했다. 중국사람들이 좋아하는 디자인으로 표지 작업을 새로 하기도 했다. 1999년 통계에 따르면, 홍콩 주요 4개 쇼핑몰 안에서만 90개의 소매점이 따오판 AV를 판매했고, 하루 판매수익은 총 81만 홍콩달러(약 1억 원)에 가까웠다고 한다. 당국의 단속이 없었을까 싶지만, 워낙에 수익이 많아서 다들 위험을 감수하고 판매했다고 한다. 단속이 정 불안한 도매상들은 자체적으로 위험한 장면들을 편집해서 판매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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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도성숙시>에서의 영화배우 이려진

 

 

 #6 왜 하필 유키 마이코였을까?

 

 

따오판 AV가 붐을 이루던 중에, 이용자들에 의해 저절로 '발견'된 미소녀가 유키 마이코였다. 런던대 인류학 교수 야오헤이엔(邱愷欣)은 유키 마이코 신드롬을 테마로 논문을 쓴 적이 있는데, 그는 "유키 마이코의 귀엽고 달달한 '미소녀' 이미지가 현대 홍콩의 중산층 청년들 사이에서 새롭게 부상하던 여성상과 완벽하게 가까웠다"고 심도있게 분석하였다.

 

 

이전까지 성인물이라고 하면 미국 포르노였다. 여기서 여성들은 섹스를 공격적으로 탐닉하는 색녀로 그려졌는데, 아직 2-30대 젊은 청년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부담스럽거나 천박하게 느껴졌다. 보다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대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여성상으로 되돌아가는 건, 너무하다 싶었던 것 같다. 항상 남성에게 순종적인 것으로 그려졌던 봉건시대의 여성들은 너무 불쌍하거나, 고리타분한 것으로 보였다.

 

 

홍콩영화에서 '엽옥경(베로니카 입)'이라는 배우는 훌륭한 섹스 심벌이긴 했지만, 서구적인 색녀 기믹에 해당했다. 반면에, 에로영화 <만다린>(1995)에서 양반집 규수 역으로로 등장하는 배우 '옹홍'은 전통적인 여성상에 해당했다. 야오헤이엔 교수는 전자와 후자 모두 각각의 단점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둘 사이를 절충하는 건, 이른바 '미소녀'였다고 한다.

 

 

'미소녀(美少女)'라는 단어는 순전히 일본에서 유래한 말이다. 뜻 자체는 '아름다운 소녀'를 일컫지만, 서브컬처에서는 좀더 의미를 확장시켜 아름다운 성인에게도 이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 보통 성인물에서 미소녀라고 한다면, 섹스 심벌로는 살짝 미숙하지만, 마치 첫 연애상대처럼 풋풋하게 사랑을 나눌 수 있을 듯한 이미지의 여성을 뜻하곤 한다. 야오헤이엔 교수는 영화계에서는 <밀도성숙시>(1993), <옥보단 2>(1996) 등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 이려진이 미소녀 캐릭터에 가장 부합했고, 그래서 청년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고 분석하였다.

 

 

90년대 중반, 중국에서 밀수입한 따오판 VCD가 범람하면서, 성인물의 주류는 미국산 포르노에서 일본산 AV로 넘어갔다. AV의 장르를 크게 분류하면,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치녀물(숙녀물도 포함), 둘째는 능욕물(가학-피학 성향이 있는 걸 모두 포함), 마지막은 미소녀물이다. 치녀물은 서구 색녀 기믹에 해당해서 낯설고 부담스러웠으며, 능욕물은 정서적인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미소녀물이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홍콩영화에서는 이려진이 그러했던 것처럼, 유키 마이코는 미소녀물에 출연하던 AV배우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미소녀형에 가까웠다. 유키가 일종의 신드롬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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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홍콩 시내를 활보하고 있는 유키 마이코

 

 

  #7 기념비적인 사건: 1997년 4월 12일, 홍콩 팬 사인회

 

 

1997년, 홍콩의 젊은 기업가 '종젠창(鐘健強)'은 <호정야생활(豪情夜生活)>이라는 성인잡지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호기 넘치는 밤문화'라는 뜻으로서, 주된 기사내용은 홍콩이나 마카오 일대의 유흥문화나 풍속점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키 마이코가 인기 있다는 정보를 얻고, 잡지사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어찌어찌하여 일본에 있는 그녀와 실제로 연락이 닿았다.

 

 

종젠창과 유키와의 계약이 정확히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종젠창 측은 '영화 출연'을 미끼로 던졌을 것 같다. 유키는 연예생활을 회의감을 갖고 은퇴한 이후였지만, 원래는 연기자가 꿈이었다. 갑자기 홍콩에서 영화를 찍자고 연락이 왔다면, "한번 가볼까"하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리가 없다. 당시 홍콩영화는 지금과는 전혀 위상이 달랐다. 장국영, 왕조현, 유덕화, 여명, 금성무 등이 한창 전성기를 누리던 때의 홍콩영화였다.

 

 

종젠창은 영화제작과 전혀 관련이 없던 사람이었지만, 자본을 끌어모아 영화제작의 구실을 만들어놓았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영화 급의 스케일은 아니었고, 정말이지 유키 마이코를 부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초저예산 영화였던 것 같다. 영화 제목은 잡지명 그대로 <호정야생활>.

 

 

1997년 4월 12일 토요일, 유키 마이코는 2시 비행기를 타고 홍콩에 도착하였다. 주최측은 유키를 여느 A급 영화배우들과 동급으로 모셔, 아주 극진히 대접했다. 이동을 위하여 롤스로이스 차량이 제공되었고, 여섯 명의 경호원이 따라붙은 채로 시내에서 식사를 간단하게 마쳤다. 첫 번째 일정은 영화 홍보차 이루어지는 팬 사인회였다.

 

 

팬 사인회는 홍콩의 번화가 웡걱(몽콕)에 위치한 쇼핑몰 신와(信和)센터에서 오후 4시반부터 6시까지 열릴 예정이었다. 신와센터는 오타쿠의 성지로 불리던 곳이었다. 행사가 예정된 3층 플로어에는 일찍부터 약 5백여 명의 팬들이 줄서고 있었다. 행사장에 들어가지 못한 팬들은 유키 마이코를 보겠다고 웡걱 시내를 가득 메웠다. 어떤 기록에서는 8천 명의 팬들이 모였다고 하던데, 쇼핑몰 주변에 모였던 인파들까지 추정해서 나온 수치인 것 같다.

 

 

가뜩이나 사람이 밀려 혼란스러운 상황을 막장으로 치닫게 만든 건, 인근 경찰서로 연락온, 의문의 전화 한 통이었다. 신와센터에서 "사린이 발견되었다"는 제보였다. 사린은 화학 병기로 사용되는 독가스의 일종으로, 실제로 1995년 3월 20일, 도쿄 지하철에서 사린가스가 살포되는 테러가 발생한 적이 있었다. 긴급상황 경보가 발령하였다. 경찰차 24대와 소방차 67대가 웡걱으로 총출동하였고, 그 밖에도 다수의 구급차가 신와센터로 모였다. 경찰은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내쫓고 입구를 완전 봉쇄했다. 방독장비를 착용한 처리반이 조사에 나섰다. 

 

 

유키 마이코 일행이 롤스로이스를 타고 행사장 앞에 도착했을 때, 시내는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건물 밖으로 내쫓겨난 팬들은 유키를 보겠다고 차량 주변을 에워쌌다. 그녀는 이벤트를 위해 교복으로 갈아있은 상태였다. 밖에 나가면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매니저의 판단 하에, 유키는 차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고 현장을 떠났다. 차가 그냥 떠나려고 하자, 광분한 팬들이 아우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종젠창 사장의 후일담에 의하면, 성난 군중에게 공격받아 롤스로이스 지붕에 금이 갔다고 한다. 다소 과장이 섞인 말인 것 같긴 하지만, 상황이 통제불능이었던 건 확실한 것 같다.

 

 

한편, 사린 가스를 수색하던 처리반은 오후 4시 48분에 건물 2층 여자화장실에서 수상한 골판지 상자를 발견했다. 상자 겉면에는 "모두 접근마라, 사린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정작 안에 들어 있는 건, 사린이 아니라, 초산이 담겨 있는 플라스틱 맥주통이었다. 맙소사, 누군가가 장난을 친 것이었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지만, 팬 사인회 주최측과 경쟁 구도에 놓인 업체 중 하나가 행사를 망치려고 한 소행이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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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호정야생활>의 스틸 컷

 

 

팬 사인회가 파토난 다음, 유키는 영화 <호정야생활>과 홍보용 화보를 촬영하였다. <호정야생활>은 유키 마이코를 섭외하기 위해 급조된 영화였기 때문에, 별 내용이 있진 않았다. 동명의 잡지 내용 그대로 홍콩과 마카오의 유흥문화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전부였다.

 

 

유키 마이코가 주연이랍시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실제로 그녀가 출연한 장면은 한 씬 밖에 없었다. 욕조에서 헤어누드 상태로 자신의 AV 데뷔작 <처녀궁 졸업> 표지커버를 보고 있는 내용이었다. 96분의 러닝타임중 나머지는 유흥점의 아가씨들이 서비스를 해주는 소프트코어 포르노로 마저 채워넣었다. 남자 희극 배우 바비 입(八両金)도 잠깐 출연했다. <호정야생활>은 1997년 5월 23일에 극장에서 개봉했다. 극장수입은 334만 홍콩달러(한화 약 5억원)이었다(DVD 출시는 2003년 2월 24일).

 

 

1997년 4월 12일, 이날의 소동으로 인해, 일본 국내에서는 유키 마이코의 입지가 훨씬 드높아졌고, 그녀에게 '아시아의 여신'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아시아에서의 포르노 시장이 얼마나 유망한 블루오션인지 사람들에게 각인시켜준 사건이었다. 따오판 AV는 90년대 후반 최고 전성기를 맞이했고, 오자와 마도카, 카나자와 분코, 카와시마 아즈미, 아오이 미노리 등 다른 미소녀 후발주자들이 홍콩과 대만 등지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물론, 유키 마이코의 인기도 2000년대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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